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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을사오적 중 진짜 친일파는 누구였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

by 역사어드벤쳐 2025. 6. 6.

1905년, 대한제국은 사실상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당합니다. 이 조약으로 외교권이 일본에 넘겨지며, 실질적인 식민지화의 전단계가 시작되었고, 이 조약에 찬성한 다섯 명의 고위 관료는 ‘을사오적(乙巳五賊)’이라는 낙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사에는 늘 이면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다섯 인물 중 **누가 진짜 친일파였고, 누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비화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을사오적 중 진짜 친일파는 누구였나?

 

1. 을사오적이란 누구인가?

을사조약에 찬성한 다섯 명의 핵심 인물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이완용(李完用) – 당시 중추원 의장, 후일 총리대신
  • 박제순(朴齊純) – 외부대신(외교부 장관 격)
  • 이근택(李根澤) – 군부대신(국방부 장관 격)
  • 권중현(權重顯) – 내부대신(행정 내무장관 격)
  • 이지용(李址鎔) – 학부대신(교육부 장관 격)

이들은 일본의 위협과 회유에 굴복하여 조약 체결에 찬성했으며, 민중과 언론으로부터 **매국노, 오적(五賊)**이라는 극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각 인물의 행적과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책임과 친일 성향에도 온도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완용 – 명백한 대표 친일파

이완용은 을사오적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친일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조약 체결 이후에도 **정미7조약, 한일병합조약까지 연이어 협조**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와 막대한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공식 정치적 협력자로 활동했으며, 자발적으로 일본 편에 서서 대한제국의 해체에 앞장섰습니다. 이완용은 이후 **암살 시도**를 수차례 받았으며,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대표적인 ‘매국노’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3. 박제순 – 회유와 공포 속의 동조자

박제순은 외교 책임자로서 을사조약을 체결한 **직접 책임자** 중 하나입니다. 그는 당시 조약 문서에 서명한 인물로, 일본이 가장 중요시했던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사료에 따르면 그는 **외교적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인식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조인했다는 흔적**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그는 을사늑약 이후 민중의 격렬한 비난을 받고 정치적으로 은퇴하다시피 했으며, 이후 뚜렷한 친일 활동은 보이지 않습니다.

즉, 박제순은 **적극적 친일이라기보다는 소극적 협력자**에 가까우며, 심리적·정치적 압박에 따른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4. 이지용 – 권력욕에 따른 행동?

이지용은 학부대신으로, **권력과 관직 유지에 가장 민감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조약 이후에도 일본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작위를 수용**하며, 친일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일제는 그를 학제 개편과 교육 장악의 일환으로 활용했으며, 이지용은 이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막대한 재산과 명예를 취득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지용은 ‘실질적 매국 행위자’로 평가되며, 이완용 다음으로 **강한 친일 성향을 보인 인물**로 분류됩니다.

5. 이근택 & 권중현 – 존재감은 낮았지만...

이근택과 권중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군부대신과 내부대신으로, 조약 체결 과정에서 중립 또는 묵인하는 입장을 취했고, 최종적으로는 찬성에 가담했습니다.

특히 이근택은 일본의 무력 시위에 겁을 먹고, "피를 보지 말자"는 판단으로 조인에 동의했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권중현 또한 마찬가지로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으며, 일본의 강압과 이완용의 설득에 끌려간 형태였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들은 을사오적으로 분류되지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적극적 친일파’라기보다는 책임 회피형 협력자’**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6. 을사오적,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을사오적이라는 호칭은 **역사적 낙인**입니다. 이들에 대한 분노는 정당하고, 당대 민중의 상실감과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들을 단순히 '모두 똑같은 친일파'로 규정하기보다는, 각 인물의 행동 동기와 배경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을사오적 외에도 **조약에는 서명하지 않았지만, 이후 더욱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친 정치인, 사업가, 지식인들이 존재**했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됩니다. 즉, '을사오적'이라는 프레임은 상징적인 정치적 도구였을 뿐, **당시 친일의 실체는 더 넓고 깊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진짜 친일파는 누구였는가?

이완용은 단연코 ‘진짜 친일파’라 할 수 있습니다. 조약을 주도하고, 지속적으로 일본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며, 대한제국의 멸망을 사실상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물들은 친일 협력자였지만, **정도의 차이와 역사적 맥락이 다릅니다.** 회유, 협박, 생존 본능, 명분 없는 기회주의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판단할 때 ‘누가 나빴다’보다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함께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거의 배경과 진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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